부산 원도심 역사와 중구, 동구, 도시 변화
부산에서 오래 살다 보면 도시에도 중심이 옮겨간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됩니다. 요즘 부산의 번화한 모습을 떠올리면 서면이나 해운대, 센텀시티 같은 곳이 먼저 생각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산의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부산항을 끼고 있는 중구와 동구 일대에는 지금도 오래된 부산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저 역시 부산에서 60년 넘게 살아오면서 부산역, 남포동, 광복동, 국제시장 같은 곳을 여러 번 지나쳤습니다. 워낙 익숙한 이름들이라 예전에는 오히려 그곳들이 왜 부산의 중심이 되었는지 깊이 생각해볼 일이 많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오래 사는 동네가 그렇듯 부산도 제게는 한동안 ‘알고 있는 곳’에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부산에 관한 기록을 하나씩 찾아보기 시작하니 익숙했던 장소에도 제가 몰랐던 시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지난 글에서 부산항의 역사를 살펴보다가 한 가지가 궁금해졌습니다. 항구가 커지면서 부산이라는 도시는 어디에서부터 커져갔을까?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부산의 원도심을 만나게 됩니다.
부산 원도심은 어디를 말할까
‘원도심’은 도시가 성장해온 오래된 중심 지역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부산에서는 중구·동구·서구·영도구 등 부산항과 가까운 지역을 원도심권으로 묶어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원도심의 구체적인 범위는 행정이나 도시계획 등 사용하는 맥락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중구와 동구 일대를 살펴보면 부산의 근현대사를 보여주는 장소들이 가까운 거리에 이어져 있습니다. 부산항과 부산역이 있고, 남포동과 광복동을 비롯해 국제시장과 자갈치시장 같은 오래된 상업 공간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장소들을 하나씩 놓고 보면 서로 다른 곳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부산이 성장해온 과정을 놓고 보면 서로 연결된 도시 공간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항구를 통한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활발해지면서 주변의 상업과 생활 공간도 변화했고, 철도가 연결되면서 부산과 다른 지역 사이의 이동도 확대됐습니다.
저도 예전에는 부산역은 부산역이고, 남포동은 남포동이고, 국제시장은 국제시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두 익숙한 장소였지만 서로 어떤 관계를 가지고 성장했는지까지 생각해본 적은 많지 않았습니다.
도시의 역사를 알고 나니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항구와 철도, 시장과 주거지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부산의 오래된 중심 공간을 만들어왔다는 것입니다.
부산항과 부산역 사이에서 커진 도시
지난 글에서 부산항이 부산의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원도심을 살펴보면 그 관계가 조금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항구를 통해 이동한 사람과 물자는 도시 안과 다른 지역으로 다시 이어졌고, 철도 교통 역시 부산의 도시 성장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부산역이 있는 초량 일대와 부산항이 가까이 자리한 모습은 항만과 철도가 함께 부산의 교통망을 형성해온 과정을 보여주는 하나의 단서입니다.
항구와 역을 중심으로 사람들의 이동이 활발해지면서 주변에는 숙박과 상업, 운송 등 여러 도시 기능이 발달했습니다. 지금 부산역 주변을 바라보면 높은 건물과 넓은 도로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하지만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오래된 골목과 비탈길도 함께 보입니다.
새로운 부산과 오래된 부산이 한 공간에 겹쳐 있는 셈입니다. 부산에서 오래 살아온 제게는 특별할 것 없던 풍경이었습니다. 그런데 부산의 역사를 하나씩 찾아본 뒤에는 이런 모습도 전과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예전에는 목적지에 가기 위해 지나가는 길이었다면 이제는 ‘이 길은 왜 이렇게 생겼을까’, ‘이 동네에는 왜 오래된 골목이 남아 있을까’를 한 번 더 생각하게 됩니다.
피란수도가 남긴 원도심의 또 다른 시간
부산 원도심을 이야기하면서 한국전쟁 시기를 빼놓기는 어렵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은 임시수도의 역할을 했고 전쟁을 피해 많은 피란민이 부산으로 모였습니다. 짧은 기간에 인구가 크게 늘면서 부산의 주거 공간과 생활 공간도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부산은 산지가 많고 평지가 제한적인 지형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전쟁과 피란으로 주거 공간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면서 산비탈에도 생활 공간이 확대됐습니다. 오늘날 원도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가파른 계단과 골목, 산복도로 주변의 주거지를 이해할 때는 부산의 지형뿐 아니라 피란 시기와 이후 도시 확장 과정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부산 사람에게는 산 아래에도 집이 있고 산 위에도 집이 있는 풍경이 그리 낯설지 않습니다. 저 역시 그런 모습을 오랫동안 부산의 평범한 풍경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부산의 옛 모습을 찾아보면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풍경에도 도시가 지나온 시간과 지형이 함께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시장 역시 당시 사람들의 생활과 밀접했습니다. 국제시장과 부평 일대 같은 원도심의 시장은 오랜 시간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이면서 많은 사람의 생업과 생활이 이어지는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원도심을 바라볼 때 전쟁과 피란, 장사와 생업, 그리고 도시가 변화해온 시간을 함께 생각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산복도로가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됐고 그 주변에 어떤 생활문화가 자리 잡았는지는 다음 글에서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려고 합니다.
중심은 달라졌지만 원도심의 시간은 남아 있다
도시는 계속 변합니다. 부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도시가 넓어지고 새로운 주거지와 상업지역이 생기면서 부산 사람들이 생각하는 ‘중심지’의 의미도 예전과 달라졌습니다. 제가 부산에서 살아온 60여 년 동안에도 도시의 모습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도로가 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어느 순간에는 예전에 익숙했던 풍경이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반대로 예전에는 크게 눈여겨보지 않았던 오래된 골목이나 건물이 이제는 부산의 지난 시간을 보여주는 풍경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도시가 변한다는 것은 새로운 것이 생긴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익숙했던 것이 조금씩 사라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오래된 중심지의 시간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남포동과 광복동의 거리, 부산역과 초량의 골목, 국제시장과 자갈치 일대, 그리고 그 뒤편으로 이어지는 산비탈의 주거지를 함께 바라보면 부산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도시가 되었는지 조금씩 연결됩니다.
오래 살아서 잘 안다고 생각했던 부산인데, 기록을 시작하고 보니 오히려 모르는 것이 더 눈에 들어옵니다. 제가 생각하는 부산 원도심의 매력은 모든 것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래된 부산과 지금의 부산이 같은 공간에서 계속 겹쳐 보인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원도심을 단순히 ‘지나간 부산’이라고만 생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지금도 사람들이 살고, 일하고, 장사를 하고, 기차를 타고 오가는 현재의 부산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일상 아래에 부산의 여러 시간이 포개져 있을 뿐입니다.
어쩌면 이 블로그에 부산 이야기를 기록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익숙해서 그냥 지나쳤던 부산을 한 번 더 바라보고, 제가 살아온 도시가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 천천히 알아가는 것입니다.
자주 궁금해하는 것
Q1. 부산 원도심은 어느 지역을 말하나요?
일반적으로 부산항 주변의 중구·동구·서구·영도구 등을 원도심권으로 이야기합니다. 다만 원도심의 범위는 행정이나 도시계획, 사용하는 맥락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습니다.
Q2. 부산 원도심이 부산항과 관련이 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부산항을 중심으로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활발해지면서 항구 주변의 교통·상업·생활 기능도 함께 변화하고 발달했습니다. 부산역과 여러 시장이 자리한 과정 역시 부산의 도시 성장 과정과 연결해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Q3. 부산 원도심에는 왜 산복도로와 비탈진 골목이 많나요?
부산은 산지가 많은 지형을 가지고 있으며, 한국전쟁과 피란 시기를 비롯한 인구 증가와 도시 확장 과정에서 산비탈에도 주거지가 확대됐습니다. 부산의 지형과 근현대 도시사가 함께 만들어낸 풍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료를 확인하며 기록했습니다
원도심의 범위와 부산항·철도·피란 시기의 도시 변화에 관한 내용은 부산광역시 등 공공기관에서 제공하는 부산의 역사와 도시 관련 자료를 중심으로 확인했습니다. 원도심의 범위나 도시 변화의 원인은 하나의 기준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특정한 원인 하나로 단정하지 않고 여러 역사적 배경을 함께 살펴봤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부산 산복도로 역사와 피란민, 산동네, 생활문화를 주제로 산복도로가 만들어진 배경과 그곳에 자리 잡은 사람들의 삶과 생활문화를 살펴보겠습니다.